스물 여덟의 의리란 by 하다

그러니까 작년 9월, 내가 광주에 내려오면서부터 회동이 시작됐다.
일요일 오전, 얼굴에 물 하나 묻히지 않는 몰골로 버스를 타고 외딴 동네에 모인다.
그리고 목욕탕행. 목욕도 모자라 찜질방 굴 속에서 한 숨 자고 난 뒤에야 밖으로 나온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민낯으로 레스토랑에 간다.
샐러드와 피자를 시켜놓고 나 혼자 고민에 빠진다.
맥주 먹을까 말까. 먹고 싶긴한데, 지금 먹으면 몸한테 죄 짓는 기분이야.
그럼 오소리가 보란듯이 웨이터를 부른다.
여기 카프리 2개 주세요.


그리고 이어지는 와인의 향연. 그냥 만나 와인 마시고, 밥 먹고 2차로 와인 마시고, 생일파티를 하자고 하면 주인공 본인이 와인을 사들고 오는 식이다. 하루는 기분이 좋아서 마음껏 마셨다가 다음날 사무실 책상 앞에 쪼그려 앉아서 퇴근 시간을 기다린 적도 있다. 그래서 깨진 술값도 어마어마한데, 괜찮다. 왜냐하면 친구에겐 남자친구의 카드가 있으니까. 저번엔 합법적으로 참지집에 가서 당당히 룸에 들어가 정식을 먹었다. 우리는 룸비가 따로 붙는다는 걸 그 때 처음 알았다. 그 뒤로 세 번 만날 때까지 친구에게 물었다. "성훈이가 별 말 안했어?" "응, 말 하고 긁었잖아." 뭐 이런식.



그래서 우리는 먹으러 여행을 떠났다. 전주에 가서 가장 처음 간 곳은 전일슈퍼. 당당하게 걸어서 길을 나섰는데 중간쯤 택시를 탔다. 모진 바람 때문이라고 둘러댔지만 그 뒤로 친구들은 나의 인간네비를 믿지 않았다. 어찌되었든 친구들에게 가맥의 황홀경을 선사한 후 "배 터질 것 같아"를 100번쯤 들었는데 다시 모진 바람을 뚫고 외할머니 솜씨에 단팥죽을 먹으러 갔다. 그리고 팥빙수를 포장해오는 센스. 콩나물국밥과 풍년제과, 상덕카레, 꿀타래, 호두과자 등등 먹는 걸로 기록을 세운 여행이었지만 1박 2일 여행에 전일슈퍼를 이틀간 건 나의 전주 여행 기록상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리고 오소리는 황태 일곱마리를 포장해갔다.


스물 여덟의 우리들. 웃기긴 하다.



여전히 우리는 종종 만나 회포를 푼다.
"나 브런치 먹고 싶어!" 하면 브런치 식당에서 2시에 만나, 한다.
이건 브런치도 아니고 런치도 아니여...
이제 왕계미가 수원으로 떠나기 전까지 한 달 여 정도 시간이 남았다.
왕계미와 내가 무려 2학년 때 같은 반이었다는 사실을, 엊그제 수학여행 사진을 보며 알았다.
재수없었던 시절을 청산하고자 이제 잘해 보려고 하는데................. 
나는 아무래도 교훈적인 사람으로는 못살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스물 여덟의 의리란,
사고 쳐서 먼저 시집가지 않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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